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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시인 ; 윤동주와 서정주

by 찍고 읽고 걷다. 2018.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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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서정주는 청년시절에 일제강점기를 겪은 시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에 시련과 고난의 파도가 덮칠때 정반대의

선택을해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산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윤동주는 1917년 만주 북간도 출생입니다.

1945년 2월 이종사촌 송몽규와 항일운동을 계획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복역하던 중 건강악화로 사망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은 긴 전쟁으로 군인에게 수혈할 피가 부족하게 되자

이를 바닷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죄수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시인 윤동주도 희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이 시는 윤동주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시로써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한 후

일본의 자취방에서 쓴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정주는 1915년 6월 30일 전라도 고창출생입니다.

시인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서정주라는 이름보다

'다츠시로 시즈오'라는 일본이름을 더 많이 사용했습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벽'으로 당선되어 시인활동을 시작했고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친일 문한을 발표합니다.

해방후 그는

"일제 강점기가 백년 이상 갈 것으로 봐서

그들의 회유를 거절할 수 없었다."

라고 변명을 합니다.

하지만 이후 들어선 미군정과 군부독재 시절에도

권력에 빌붙어 아첨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승만 정권 초기에는 이승만을 찬양하는 전기를 쓰고

전두환 정권에게는 생일 기념 축시를 지어서 바치고

광주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에게 '단군이래 최고의 미소'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합니다.

이에 전두환은 다츠시로 시즈오(서정주)에게

'단군이래 최고의 시인'이라고 답을 했다고 하는데..

정말 놀고들 있네요

단군 할아버지가 호되게 혼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승에서 쑥과 마늘을 1000년 동안 먹고 사람이 되시길...

 

마쓰이 오장 송가

                                               다츠시로 시즈오(서정주)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구국대원

구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리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당시 조선의 젊은이 들에게 카미카제에 지원해서

미국을 쳐 부수라고 부추기는 시를 쓴 다츠시로 시즈오(서정주)입니다.

카미카제에 대한 찬양은 친일행위를 넘어서

반인륜적인 행위에 동조한것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둘 중 한명의 인생을 선택해야 한다면

망설임없이  윤동주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는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머리로 생각해보고 글로 쓰는것과

실제로 고문을 당하고 피를 토하며 참혹한 죽임을 당하는것은

비교할수조차 없이 큰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앞장서서 악에 맞서지도 않고

앞장서서 악에 빌붙어서 살지도 않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중간쯤에 욕을 먹지않을 만큼 처벌받지 않을 만큼

시대에 순응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나 살고 있는것을 감사히 여기며

앞으로 위기와 혼돈의 시기가 찾아 왔을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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