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지금은 좀 오래된 영화이지만 영화 1987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힘들게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놓고 왜 투표로 노태우를 뽑은 거지?'
국민들이 6월항쟁을 통해 직선제를 얻어 놓고도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김대중과 김영삼후보(당시)가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진보, 보수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그 지역 출신의 후보를 찍어주는 분위기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투표결과 노태우 후보가 36.6%, 김대중 후보가 27%, 김영삼 후보가 28%를 얻어서
결국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권이 분열되고 일부는 보수화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의 상황
13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지고 얼마 후 국회의원 총선거도 치러지는데
노태우의 민주정의당이 125석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70석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59석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35석을 차지하게 됩니다.
결국 노태우정권은 국회에서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채 여소야대의 정부를 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 삼당합당이라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삼당합당이란
민주정의당(노태우) + 통일민주당(김영삼) + 신민주공화당(김종필)이 민주자유당으로 합당을 한 사건입니다.
(공교롭게도 당이름에 모두 '민주'가 들어가네요)
지난 대선때 안철수, 심상정 후보가 양당정치 체제를 깨트려야 한다고 3당 이상의 체제를 구축해서
실질적인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해야한다고 주장을 했었죠
(안철수 후보는 결국 합당을 했지만)
우리나라국회를 차지하고 있는 정당이 단순화된 것이 바로 이 3당 합당 사건 때문입니다.
이때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이후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 미래통합당 -> 국민의 힘
으로 이름을 계속해서 바꾸게 됩니다.
삼당합당
삼당합당을 처음에 구상한 사람은 의외로 김종필 총제였다고 합니다.
13대 대선 이후 김종필 총제는 차기 대선에서도 국민투표로는 대통령당선이 불가능하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직선제가 아닌 의원내각제로 개편을 하면 자신이 승산이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고
의원내각제로 바꾸기위해서는 헌법 개헌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과반 이상의 국회 의석수를 차지하기 위해 삼당합당을 생각해냅니다.
김종필은 먼저 어려운 상황에 놓인 노태우에게 먼저 손을 내밀게 됩니다.
그리고 총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밀린 김영삼 후보도 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4개 주요정당중 3개의 당이 합당해 버리는 삼당합당이 이뤄지게 됩니다.
(김종필 총제는 김영삼 후보에게 제안하기 이전에 더 많은 의석수를 가지고 있는
김대중 후보에게도 3당 합당을 제안하게 되는데 김대중 후배가 이를 거절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김영삼의원은 민주화 항쟁에 선봉에 섰던 인물에서
군부정권과 손잡은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 이후에 대통령에 당선된 후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고
실제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우고 감옥까지 보내는등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삼당합당이 발표가 되고 회견도 마무리가 되어갈때
한 무명의 초선의원이 이의를 제기하게 됩니다.
이 초선의원은 반대토론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 초선의원은 시간이 흐른뒤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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