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사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 중 한명입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인상파 화가
동료 화가인 폴고갱과 말다툼 후 스스로 귀를 자르고, 결국에는 스스로 목숨까지 끊어버린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가 가장 비싸게 팔리는 그림이지만
생전에는 단 한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해 평생 가난에 허덕인 비운의 화가
하지만 그의 고단한 인생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절대로 가지지 못한
다른 이들이 모두 부러워한 그의 인생에 있어서의 보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입니다.
테오 반 고흐와 빈센트 반 고흐는 서로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형재애를 키워왔습니다.
(그들의 편지만을 엮은 책도 있습니다.)
빈센트의 동생 테오는 화방에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형에게
이젤과 물감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돈, 나중에는 치료비까지 꼬박꼬박 보내왔습니다.
(빈센트는 그 돈으로 물론 물감도 샀지만 앱상트도 많이 사서 마셨습니다.)
나중에는 빈센트가 그린 그림의 양이 많아지자 그림을 보관할 방까지 따로 구해주게 됩니다.
테오는 금전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빈센트가 화가의 꿈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는 응원과 지지를 함께 보내줬습니다.
빈센트도 동생이 보내주는 동을 그렇게 흥청망청 쓰지만은 않았습니다.
이젤을 아껴서 사용하기 위해서 이미 그렸던 그림 위에 다시 덧칠을해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흐의 많은 그림들은 X선으로 촬영하면 그림 밑에 감춰진 다른 그림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위 그림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입니다. 오래전 오르세 미술관 전시때 한국에 오기도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 쟁쟁한 화가의 그림들이 많이 걸려 있었는데
단연 고흐의 이 그림앞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이 그림 때문에 바로 옆에 걸려 있던 그림은 제대로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심지어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관람했었는데
그렇게 외면 받았던 그림조차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생 테오에게도 가족이 생기면서 더이상 형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계속해줄 수 없게 되고
이것을 편지로 형에게 알려줍니다.
직접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편지를 받고 얼마 후 빈센트 반 고흐는
스스로에게 총을 겨누게 됩니다.
이를 두고 빈센트가 동생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원래 반 고흐 집안에는 빈센트라는 이름의 첫째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째 아들이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죽게되자 고흐의 부모님은
둘째에게도 똑같이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훗날 이를 알게 된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존재는 단지 죽은 형의 대리인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 고흐 집안에는 또 다른 빈센트 반 고흐가 있는데 바로 테오 반 고흐의 아들입니다.
테오는 형을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의 아들에게도 형과 똑같이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되는데
빈센트의 조카도 이 이름을 매우 싫어했었다고 합니다.
빈센트의 조카역시 화가의 길을 걷게 되는데 삼촌의 거대한 그림자와
삼촌과 똑같은 빈센트라는 이름 때문에 도저히 본인 스스로의 화가 활동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형 빈센트 반 고흐가 죽고 나서 몇 달 후 동생 테오도 병으로 죽게 됩니다.
사망원인은 유산, 만성질환, 과로, 슬픔으로 인한 치매 마비라고 합니다.
1800년대 후반이었던 만큼 지금처럼 의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으로 볼 수 없지만
형의 죽음이 테오에게는 견딜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이었던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1987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거액으로 경매된 이후 반 고흐라는 이름도
수백만 달러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테오가 보내주는 50프랑을 기다리면서
굶주림 속에서도 그림만 그려야 했던 반 고흐는
이러한 사실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 ; 반고흐 태양의 화가
이번 주에는 저녁 또는 낯, 아니면 밤낮을 동시에 해도 상관없겠지만
감자 접시를 놓고 둘러앉이 있는 농촌사람들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성공할지 혹은 실패할지 알 수는 없지만 각기 다른 형태로 스케치를 시작할 예정이다.
테오에게 188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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